[소주] 참이슬 증류주 세계 1위 맞아?

 

 


선정자 이해부족으로 ‘스피릿’ 대접받은 희석식 소주…제대로 증류한 전통소주는 2% 미만

올 7월 중순 15개 이상의 매체에서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진로의 참이슬이 전세계 증류주 가운데서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영국 주류 전문지 <드링크스 인터내셔널>(Drinks International) 7월호를 인용해 국내 언론은 기사를 썼다. 주당들이 위스키의 대명사로 인식하는 ‘조니 워커’나 ‘제이앤비’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서 몇 억명의 인구를 소비자로 거느린다. 이들 위스키보다 참이슬이 양으로는 더 많이 팔렸다는 말이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 잡지가 발표한 ‘2008년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Millionaires 2008) 목록을 보면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린다. 이 잡지는 증류주를 세 개의 범주로 나눴다. ‘국내 제품’(Domestic/Local)은 판매량의 90% 이상이 한 나라에서 팔리는 증류주다. ‘지역 제품’(Regional)은 판매량의 80% 이상이 특정 지역에서 팔리는 증류주다. ‘국제 제품’(International)은 최소한 둘 이상의 지역에서 팔리고 한 지역에서 팔리는 양이 79.9%를 넘지 않는 제품이다. 이 잡지가 조사한 전체 증류주의 절반이 국내 제품에 포함돼 있다. 2003년과 2007년 사이에 ‘국내 제품’은 크게 성장했다.

 

증류주 주종은 위스키, 브랜디(과실주를 증류한 알코올이 강한 술의 총칭)와 코냑(프랑스의 코냑 지방에서 포도주를 원료로 만든 브랜디), 화이트 스피릿(맑고 투명한 증류주), 럼, 테킬라, 리큐어(주정에 과실·과즙 등을 넣고 만든 술)와 ‘기타 증류주’(other spirits) 등 일곱 가지로 나뉜다. 이 잡지는 우리나라의 소주(soju)를 스페인의 민속주인 아니스(Anis), 중국의 백주(Baijiu), 브라질에서 사탕수수를 증류해 만드는 카차카(Cachaca) 등과 함께 기타 증류주로 분류하고 있다.

 

인공감미료 첨가했으니 리큐어가 맞을까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아니스, 백주, 카차카는 재료야 어떻든 발효된 술을 끓여 얻어낸 진짜 증류주지만 참이슬이나 처음처럼은 증류해 얻은 알코올 주정에 물과 감미료 등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증류주다. <드링크스 인터내셔널> 편집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잡지에 전자우편으로 한국 소주가 주정에 물과 몇 가지 첨가물을 섞어 만드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천 데이비스 에디터는 “한국 소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며 기자의 질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밝혀줬다”(your email is illuminating)고 답했다. “당신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를 정의해달라”고 하자 답변이 다시 돌아왔다.

 

“스피릿(spirits)은 별효된 액체를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이며 ‘정상적으로는’ 알코올 도수 37~43도 사이에서 판매된다. 43도 넘는 스카치 위스키, 보드카, 진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리큐어는 감미하거나 풍미를 더한 스피릿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국, 유럽, 미국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정의다…한국 소주는 리큐어에 가까워 보인다.”

 

표는 가장 많이 팔린 국제 제품 30개, 지역 제품 22개, 국내 제품 30개 등 범주별로 순위를 발표했다. 그 뒤 맨 마지막에 전체 판매량 순위를 제시했다. 한국 소주가 판매량에서 유수의 증류주 제품을 누른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당시 여러 매체의 기사가 보도한 것처럼 외국에서의 활발한 마케팅 덕분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이 표에서 참이슬은 ‘국내 제품’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훈김이 올라오는 안주를 두고 소주잔을 주고받는 모습은 대표적인 한국의 상징이다. 이 상징적인 모습에 등장하는 것은 서울의 경우 딱 두 종류의 소주다. 그러므로 노정순(48)씨 같은 전통 소주 애호가에게 <드링크스 인터내셔널>의 발표는 오히려 씁쓸한 수치일지 모른다.

 

전업주부인 그는 올 1~9월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의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 강좌에 등록해 수업을 들었다. 지난해 10월 우연히 전통주 시음회에서 술맛을 본 뒤 다짜고짜 “전통 술 담그는 방법을 어디서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곧장 은평구의 한국전통주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추억은 사고나 이론이 아니라 맛과 냄새로 기억된다. 그 추억이 술빚기로 이끌었다. 충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친할머니가 집안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두밥(술 빚을 때 쓰기 위해 찐 밥)을 말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요즘 세대 어린이들이 쌀이 쌀공장이나 쌀나무에서 열린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거대한 탱크에서 따로 생산된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은 소주·청주(사케)·막걸리가 이란성 세쌍둥이라는 사실을 종종 착각한다.

 

노씨는 연구소 강의실에서 세쌍둥이를 직접 ‘낳았다’. 먼저 쌀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었다. 시간이 지나 누룩이 밑에 가라앉으면 맑은 술이 위에 떴다. 용수(대나무로 만든 일종의 체)로 맑은 술을 뜬 게 청주다. 지게미와 함께 남은 술을 막 거른 것이 막걸리다. 청주를 불을 지펴(증류) 얻은 순도 높은 알코올이 전통 방식의 진짜 소주다. 연구소 소줏고리(밑에서 불을 때 증류할 수 있게 만든 전통 술빚기 도구)에서 땀을 흘리며 노씨는 소주를 내렸다. 그렇게 내린 소주와 지초(치자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를 가지고 ‘감홍로주’를 만들었다. 그는 진짜 소주 맛의 특징으로 입안을 감싸주는 감칠맛을 들었다. 아파트에 사는 그는 몇년 안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 직접 소주를 내리는 게 목표다.

 

노씨처럼 전통 소주와 전통주를 빚는 애호가가 꾸준히 늘고 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인공 감미료를 넣어 맛이 비슷한 희석식 소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와 한의약박물관에서 전통 소주·전통주 술빚기 강좌도 진행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진짜 소주 제품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통 소주 강한 향 개선책도 필요

 
대표적인 두 업체도 전통 소주의 부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처럼은 “증류식 소주는 현재 판매량에서 전체 소주시장의 2% 이내로 호응이 없는 상황”이라며 “증류식 소주는 향이 진하고 맛에서 약간 거부감이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전통주 타입의 증류식 소주 연구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드링크스 인터내셔널> 통계에 희석식 소주뿐 아니라 전통 소주가 오르는 날이 올까? 노씨 같은 전통주 애호가들은 소주의 미래가 궁금할 것 같다.

 

전통소주ㆍ전통주 빚기 강좌 및 ‘진짜’ 증류식 소주 제품 정보

 

◎ 한국전통주연구소 | 전통주 빚기 강좌는 연중 수시로 모집하며 1, 4, 7, 10월 개강한다. 수강료는 50만원(가양주반)부터 120만원(전문가반)까지 과정마다 다르다. (02)389-8611 / www.ktwine.or.kr

◎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 | 술품평가 허시명씨가 강의하며 달마다 주제가 바뀐다. (02)3293-4900 / museum.ddm.go.kr

◎ 문배술 | 평양 지역 전통술의 명맥을 잇고 있다. 23도, 40도 두 종류가 있다. 현대·신세계·롯데백화점 등과 여러 할인점에서 살 수 있다. 누리집(www.moonbaesool.co.kr/)에 판매처가 나와 있다. (02)338-0333.

◎ 안동 소주 | 원나라에서 한국에 증류 기술이 전해진 고려시대부터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입처는 누리집(www.andongsoju.co.kr)에 나온다. (054)858-4551~3.

◎ 일품진로 | 진로가 만드는 증류식 소주 제품. 순 쌀을 발효시켜 증류했고 알코올 도수 30도다. 선물세트가 2만원이 넘는다. 현대·신세계백화점과 일부 할인점에서 판다.

누리집(www.chamisulfresh.com/ilpoom/)에 판매처가 나와 있다.

◎ 화요 | 고급 도자기로 유명한 광주요에서 도전한 전통 소주 제품. 알코올 도수 41도 제품은 200㎖가 약 1만원, 25도 제품은 200㎖가 6000원이다. (02)3442-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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